⊙ 1강. 상 담 의 원 리 ⊙

1. 현대사회의 흐름

◈ 현대사회와 인간

오늘의 사회, 바로 1990년대 후반에 있는 한국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빠른 속도와 다양한 사회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도 1970년대를 기점으로 하는 경제의 고도성장에 의하여 더욱 속화되고 변화의 진폭을 확산되었다. [역사의 단축]으로 표현될 만큼 사회구조는 지나치게 빨리 변화하고 있으며 공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을 대홍수의 물결처럼 사람들의 경악과 불안을 불러 일으키면서 밀려 오고 있다. 가정이 변화하고, 세대간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으며 가치의 변화는 적응하기 어려우리만큼 혼미함을 나타내고 있다.

물질문명의 범람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대 보다도 물질의 풍요함을 향유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가장 빈곤한 자아상실의 군상이라는 표현이 오늘의 현대인을 여실히 나타내는 것이다.

군중속에서 고독함과 소외감을 느끼며 불안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현대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그 원인이 있다. 특히 현대사회는 자라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더욱 많은 고민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정체의식 (正體意識)의 위기

오늘의 젊은이들은 템포가 빠른 사회변화의 현실 속에서 여러가지 고민과 갈등에 직면한다. 그 중에서도 그들을 괴롭게 하는 가장 두드러진 고민은 이른바 정체(正體)의 위기의식이다. 내가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이며, 나는 어디에 속해 있어야 하는가 하는 자기 인식을 찾으려는 고민이다.

자신에 대한 안정되고 일관성 있는 의식이 결여될 때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그들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가치의 혼란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가치의 혼란속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회학자들의 진단은 바로 정체의식의 혼미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체의식의 혼미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를 상실하게 만든다. 미래는 소망을 주는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불안과 혼돈의 연속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미래는 추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회피의 대상이 되며 암담한 불안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투시하고 미래의 안식을 위하여 오늘의 고통을 참으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점차 현실도피적이고 비생산적이며 찰나적인 쾌락추구에만 도취하게 되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미래가 없고 지금의 괴로움을 필사적으로 회피하려는, 그리고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즉각적인 해방을 갈구하는 경향 때문이다. 그들은 방향감각을상실하고 있으며 그들의 앞날은 암담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정체의식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할 것이다.

정체의식의 위기는 어떤 문화권의 젊은이들이나 모두 공통적으로 겪는 발전과정의 일부이다. 다만 이로 인한 문제행동의 심각성이나 그 진폭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에릭슨(E.Erikson ; 1951)은 인간발달 과정에서 자아의 발달을 중시하였으며 자아의 성숙과정 중에서 정체감(Sense of identity)의 발달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유아기에 어린이들이 기본신뢰감을 획득함으로써 아동기로 전환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고, 성년기에 들어가기 전에 정체감을 확립할 수 있어야 성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신체.생리적인 발육 과정과 비교하면 사춘기에 해당되는 시기이며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부모나 가족과의 관계보다도 동우집단(同友集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의미를 나타내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정체감을 확립하기 위하여 오랫동안의 불안, 갈등, 허무감과의 투쟁을 계속한다.

심리학에서 청년기를 불안기, 격동기, 부정기(否定期)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와같은 정체감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젊은이들이 정체의식의 위기를 당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발달 과정에서 한번은 겪어야 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체의식의 혼미에서 연유하는 문제가 오늘처럼 심각하게 된 데에는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깊게 관련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심리 발달이라는 측면으로만은 생각할 수 없으며, 급격한 사회 변화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등한시 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의 경우 두 차례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도 젊은이들에게 가치의 혼란을 경험케하고 그들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데 족할 만한 일이었다. 그 하나는 8.15의 민족해방이다.

민족의 염원이었던 해방은 정치적인 혼란만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이념과 가치관에서의 카오스를 가져 온 것이다. 우리를 해방시켜 준 미국은 하늘처럼 숭배되고 그들의 문물은 모두 좋은 것으로 생각되는 가장 표현적인 풍토를 형성하였으며 그들의 문화는 은인의 문화로 여겨졌기에 그것을 면밀히 검토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문화는 물밀듯이 밀려들어 순식간에 젊은이의 사고, 태도, 생활 양식 등을 상당한 정도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개의 문화유입 과정에서 그러하듯이 미국의 정신적인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존중의 사상이나 합리주의나 생활화된 민주주의의 이념보다도 물질지상의 쾌락주의나 빗나간 개인주의, 잘못 이해된 실용주의의 사상등 이른바 저질문화가 먼저 유입된 데에 문제가 있다. 그와 같은 대중문화가 우리의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그것은 그들의 정체의식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만한 사회문화적 조건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은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인 6.25전란을 통하여 더욱 광범해지고 표현화됨으로써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시키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오늘의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삶과 방향을 정립시키는 일과 그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정체의식의 위기는 오늘의 급격한 사회변화의 산물이며 어떤 전문적인 도움에 의하여 극복되어야 할 성질의 정신적 혼란이다.

◈ 가정에 대한 위협

전통적으로 한국의 가정은 중요한 교육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 자라는 어린이에게 필요한 양육과 보호의 책임만이 아니라 바른 습관형성과 지녀야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앞으로 삶을 설계할 때에 항시 마을 속에 간직해야할 지표를 심어주는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해온 것이다.

이러한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인간 형성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의 성격, 지적 능력, 사회성 등 대부분의 심리적 특성은 기실 학교교육에 의해서라기 보다도 취학전의 어린 시절에 받는 가정의 영향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점을 우리의 가정은 충분히 인식해 왔으며 어린이들의 행동발달의 책임을 가정이 전담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개인의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몰지각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본인에게도 있었겠으나 오히려 그가 소속되어 있는 가족 또는 [집안]에 있다고 보아왔기 때문에 그 가족은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정중심의 교육적 기능은 점차적으로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계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또한 그와 같은 가정의 기능을 대행할만한 기관이 있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덜 할런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기능의 이관이나 대행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바로 이와 같은 가정의 약화 현상은 오늘의 청소년문제로 나타나는 원인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조사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문제 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가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인데 그 원인의 근원은 역시 가정에서 제대로 교육과 지도를 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가정의 약화 현상은 급격한 사회변화의 부수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몇 가지의 그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핵가족화의 경향이다. 지난 30여년간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의 현상은 핵가족화의 경향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물론 핵가족화의 경향은 도시화나 공업화의 요인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의식의 변화가 더 큰 몫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보다도 여기에서 중시하려는 것은 핵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대가족의 그것보다 훨씬 약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자들은 아동 양육에서의 양성3세대(兩性三世代)의 상보적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핵가정에서 부모 단독의 양육과 지도를 받는 어린이는 대가족에서 자라는 어린이보다 정서적으로 덜 성숙하고 사회화가 덜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핵가족화의 경향은 동시에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성의 직장진출은 가정을 교육적으로 약화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도시에서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는 대행모에게 맡겨지며 농촌에서는 노동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하여 어머니들이 농사의 상당한 인력을 담당해야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집안에 방기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목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을 모성실조(母性失調)에 관한 일련의 연구가 입증해 주고 있다

(Bowlby, 1952, Yarrow, 1964).

뿐만 아니라, 이 경우 어머니로부터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을 가정에만 머무르게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여성의 직장진출은 불가피한 현상이며 근대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여성의 직장진출 자체를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근로여성의 증가로 인하여 약화된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고 그러한 가정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발달상의 결손없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데 있다.

오늘의 가정을 위협하고 있는 또하나의 현상은 근자에 이르러 증가의 추세를 보이고 있는 이혼율의 현상이다. 어떻게 증가하고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와 같은 이혼이 개인의 정신건강과 안정된 생활을 위협하고 있으며 그 가정의 어린이들이 아직 성격적으로 성숙하기 이전에 불안, 갈등, 분노 등 생활의 쓰라림을 경험하게 된다는 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두 말할 필요없이 어린 시절의 그와 같은 경험이 성격과 태도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전통적으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온 가정의 안정을 위협하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는 오늘의 사회변화는 확실히 성인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불안과 긴장, 갈등을 안겨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은 이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해결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직업세계의 복잡성

현대사회를 특징지우는 하나의 양상은 직업의 세계가 복잡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직업세계는 불과 30년전의 그것과 판이하게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으며 50년전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직업세계의 변화는 물론 산업의 발달과 전자 자동화에 의하여 나타난 현상이다. 모든 관공서나 기업체 등의 업무가 자동화되어 있으며 그것을 수동으로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자연 새로운 직종이 탄생하게 되고 직업은 더욱 더 분화되고 있다.

새로운 직종의 탄생과 직업의 분화는 직업의 세계를 그만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1950년대 우리나라 직종은 약 2,000개가 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1995년에는 직종의 수는 11537개(중앙노동정보관리소 통계결과)로 증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종의 증가는 직종간의 상호관련성과 상승작용을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한 직종에서의 현직경험이 다른 직종에로의 전직가능성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직종간의 상호관련성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직업의 세계가 복잡해진다는 것은 젊은이로 하여금 직업의 선택을 포함하는 생애의 설계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경험한 것과는 전혀다른 복잡한 직업의 세계에서 직종을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여져있는 것이다. 10,000여종 이상에 달하는 직종 중에서 그들에게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10,000여종의 직종을 모두 선택 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의 세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직업의 선택이 어렵게 되고 인생에 있어서의 다른 어떤 결정보다도 가장 현명하고 지혜있는 결정을 요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개인의 생애의 설계와 직업의 선택은 즉흥적이거나 일시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결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애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은 일생을 통하여 후회하는 불만족을 가져올 수 있으며 직업에서의 성공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의 세계에 대한 바른 이해는 물론 현명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결정이다. 직업의 선택을 심리검사에 반영된 적성이나 개인의 흥미에 의해서 결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직업적인 성공을 좌우하는 요인 중에는 흥미, 적성 외에도 신체적 조건, 가족의 기대, 직업에 대한 가치의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개입된다. 이러한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것을 직업의 세계와 관련시킬 때 보다 현명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더욱이 직업의 세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종합적인 판단은 심사숙고를 요할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직업의 선택을 최신의 직업정보와 개인의 적성에 대한 바른 조사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지금까지의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직업정보 이상의 과업이며 특정한 직종과 개인의 적성과의 배합 이상의 종합적인 판단과 결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자기 혼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우리만큼 직업의 세계는 복잡해지고 선택을 위한 결정은 어려운 과업이 된 것이다.

◈ 인간관계의 표피화(表皮化)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두 도시화되어 가고 있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물리적으로 인구의 도시집중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이 도시인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답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보다는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도시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모두 도시인화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도시인에게는 농촌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이한 생활방식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여기에서 문제 삼으려는 것은 지역사회생활에서 인근과의 깊은 심리적인 유대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확실히 농촌과 다른 점이다.

농촌에서는 대개의 경우 마을 단위로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심리적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어느 한 개인의 슬픔이나 즐거움은 그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슬픔이나 즐거움은 심리적인 유대를 타고 온 마을에 확산되며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공감권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적 공동체의식과 공감권형성은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며 도시생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심리적 유대이다. 도시인들은 지역 사회단위의 심리적유대나 공감권은 고사하고 서로 이웃끼리도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예사이다. 말하자면 깊이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관계만을 유지라는 것이 도시인의 생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폐쇄적인 생활방식은 결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태도가 되지 못하거니와 그것이 점차적으로 확산되어 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폐쇄적인 생활은 이웃과의 전화의 기회를 희소하게 만든다. 대화를 하더라도 그것은 표피적인 대화이고 심층적인 대화는 되지 못한다. 마음 속 깊이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경험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정신적으로 불건강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많은 정신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대인은 도시인화 되어가면서 더욱 더 외로움과 소외에서 오는 번민과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표피화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표피화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그것은 대중매체라는 현대의 거대한 기관이다. 대중매체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전파매체이다. 텔레비젼이 안방에 침입한 후 가족간의 대화가 끊겼다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

그전 같으면 저녁 식사 후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대화를 하고 가정의 공동적인 관심사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논하는 일들이 흔히 있었으나 지금은 텔레비젼을 시청하기에 바쁘고 자연 가족간의 대화는 빈도수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모두 얼빠진 사람들처럼 브라운관을 들여다 보며 가족간의 대화는 사무적인 것 이외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이 가족간의 인간관계를 표피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며 그 결과로 가정내 심리적 공동체의식이나 공감의식을 점차적으로 희박해진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은 가정내에서도 마음의 닻을 내릴만한 안식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마음속을 털어 놓을 만한 대상을 찾기 어렵고 자신의 고민이나 갈등을 공감해줄 수 있는 상대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에릭 프롬(E. Fromm)의 용어를 빌리면 현대인은 감정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근원지를 상실한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당하고 있는 고민이며 전문적인 도움을 잘 구하게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 경쟁, 좌절, 갈등

어느 사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경쟁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집단이 있으면 집단내에서 경쟁이 있기 마련이며, 지위가 있으면 그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이 뒤따른다. 경쟁은 사회발전을 위한 효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가열되어 치열해질 때 그것은 많은 부작용을 수반한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사회, 어느 시대의 젊은이보다도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학교내에서의 경쟁, 입시에서의 경쟁, 직업사회에서의 경쟁 등 치열한 경쟁은 끝없이 계속된다. 그들의 경쟁생활이 얼마나 치열하고 극심한가를 관찰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하루의 생활을 관찰해 보면 그 점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적절한 경쟁이 인간의 동기를 유발하는 조건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정도가 심해진 오늘의 경쟁일변도의 생활이 정신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심리적 압력을 가중시켜주고 있는데에 문제가 있다.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고 또 오늘의 젊은이들이다.

물론 스트레스는 경쟁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도시생활의 복잡성,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의 생활, 소음, 속도가 빨라진 현대생활을 템포 등 스트레스를 가중시켜주는 요소는 허다하다. 그러나 과열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무엇보다도 크다고 할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젊은이의 정신건강을 저해할 만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등한히 할 수는 없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신경불안증적 경향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는 단적으로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대학생의 신격불안증적 경향은 줄잡아 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수험생들 중의 45%정도가우울증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되었다(87년도). 이것은 그들이 지탱하기 어려운 경쟁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작용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오늘의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과도한 경쟁에서 파생되는 스트레스만은 아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계속적인 좌절경험에서 오는 정서적 갈등이라는 현상이다. 좌절경험이 반드시 정서적 갈등이나 낙망만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그와 같은 좌절경험이 새로운 용기와 집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한 경험이 새로운 분발심을 일으켜 다음의 시험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방향전환에 의하여 성공하는 예에서 여실히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그러나 좌절 경험이 계속될 때 그것은 정서적 갈등을 일으키기에 족하다. 바로 오늘의 젊은이 중의 많은 수는 계속적인 좌절경험때문에 정서적 갈등상태에 있는 것이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일탈행동에서 그들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반사회적으로 되기 쉬운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의 정서가 안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일탈행동의 근원도 기실 정서적 갈등에 있다. 계속적인 좌절의 경험은그들로 하여금 사회를 어둡게 보게 만들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상실하게 한다.

오늘의 젊은이는 그들에게 가해지는 심리적인 압력으로 인하여 정서적으로 불안정되고 갈등상태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인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전문적인 조력이 주어져야 함은 물론 정서적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야 할 교육적인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 인간문제의 해결

급격한 사회변화는 많은 인간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현대에 사는 인간은 불안과 갈등의 연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오늘의 젊은이들은 계속적인 갈등 속에서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문제는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차원 이상의 문제이며 물리적 조정이나 물질충족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정신적인 문제이며 오늘의 환경에 대한 새로운 심리적 적응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다.

◈ 적응의 차원

인간문제를 기본적으로 인간과 환경과의 적응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적응이 성공적으로 달성될 때 통정(統整)된 인성(integrated personality)의 성숙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인간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여섯 가지 차원에 걸친 적응을 필요로 한다. 적응의 차원이란 물적 차원, 생명적 차원, 의식적 차원, 사회적 차원, 문화적 차원, 가치적 차원이 그것이다.

인간은 물질로서 물질의 세계와 작용하며 유기체로서 생명의 세계와 또 의식하는 존재로서 의식의 세계에서 생을 영위하고, 사회집단의 일원으로서 타인과의 인간관계의 세계에서, 문화인으로서 문화적인 전통 속에서, 그리고 가치추구자로서 가치있는 생을 찾는 적응을 부단히 계속한다.

인간은 어느 하나의 차원에 걸친 적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은 통정된 인성의 성숙은 물론 인간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찾게 될 것이다.

이 경우 물적 차원과 생명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적응이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우선 물적 유기체로서 생물적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 높은 데서 아래로 떨어지면 본인의 생각이나 의지에 관계없이 중력의 물리적 법칙에 따라야 하며 그리고 인간은 생물이기 때문에 잠을 자야하고 먹을 것을 섭취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적응의 차원은 인간과 동물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차원이며, 그러기에 인간문제의 본질적인 근원을 여기에서 찾을 수는 없다. 현대인이 방황하고 고민하고, 갈등을 느끼고, 불안해 하는 것은 물적, 생명차원에서의 적응이 원만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물적인 풍요의 생활을 누리고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더라도 현대인의 고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의식적 차원 이상에서의 적응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의식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타인도 의식적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심리적 세계 속에 생활하며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의 적응대상인 환경은 가시적 물적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의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현재 물리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환경을 초월하여 사고의 세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올포오트(G. Allport, 1961)가 [성숙한 인간의 특징으로서 인간의 생리적 욕구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심리적 욕구를 가지게 되며......]라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의식한 것이다. 오늘의 인간문제를 물적, 생명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본질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인간문제의 해결은 적어도 의식적 차원 이상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응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격적으로 성숙한 인간형성의 조건이 된다는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의미라며 그 관계에서의 성공적인 적응은 바로 성숙한 인간형성의 한 척도가 된다.

인간은 출생직후부터 친자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등 여러가지 종류의 최초의 인간관계인 친자관계는 인간형성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관계가 기본적인 신뢰감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것이 사회차원에서의 적응을 돕는 요인이 된다.

결국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집단 속에 자기의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 심리적인 안정과 성숙을 기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적응이 원만하게 되지 못할 때 사람들은 고독과 소외감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은 문화 속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인간이 적응해야 할 문화와 가치의 두 차원이다. 인간은 자기 생활에서 가치를 발견할 때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더욱 의식하게 된다. 그 생활이 아무리 물질적으로 윤택하더라도 그 생활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없는 때는 행복을 경험할 수 없고 진정한 적응을 기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수준의 적응이며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차원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문제는 물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라는 까닭은 오늘의 인간문제의 핵심이 문화와 가치차원에서의 적응에 있다는 관점에서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의 인간문제는 말초적으로 다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구명되어야 할 성질의 문제이다. 높은 차원에서의 적응을 돕는 것이 인간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을 찾는 길이 된다. 오늘의 인간문제, 오늘의 청소년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룩하도록 하는 데에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인간관계의 경험

오늘의 인간문제는 기본적으로 진정한 인간관계로부터의 소외에서 비롯된다. 현대인이 불안해하고 오늘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반항하며 고민하는 것은 그들이 심리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비옥한 토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그와 같은 소지를 가정이 제공해 왔고, 지역사회와 친구관계가 그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은 무력화되고 지역사회의 관계와 친구관계는 표피화됨으로써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신뢰와 심리적 근거를 줄 수 있는 여건을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인간관계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 절실하게 갈구하는 인간관계는 기본 신뢰감이 있는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불신의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 남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귀중한 경험이 된다.

서로 도움을 주고, 서로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사이에서 불안이나 정서적인 갈등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것이 친구관계이건 형제관계이건, 또는 사제관계이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이 성립된다면, 그것은 인간을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하고 집단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불식시켜 줄 수 있다.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인간관계는 심층적인 관계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그 관계의 심리적인 깊이에 따라 심층적일 수도 있고 또 표피적일 수도 있다. 표피적 관계란 표면상 원만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관계이지만, 마음 속 깊이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스럽게 토론할 수 있는 관계는 되지 못한다.

반면 심층적 관계는 비록 표면상으로 어색해 보이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이다. 바로 이와 같은 깊이있는 관계를 오늘의 젊은이들이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심리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이해와 수용의 관계는 또 하나의 요구되는 인간관계의 측면이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관계이다. 거부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 존중하고 타인의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계이다. 무릇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에게 가장 심리적 상처를 줄 수 있는 관계는 이해와 받아들임이 없이 거부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거부되지 않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은 심리적 만족을 줄 뿐만 아니라 양자간의 심리적 유대를 굳게 해준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경험은 확실히 불안해하는 현대인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정서적으로 좌절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순화시켜 줄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관계의 경험을 주는 일은 오늘의 인간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국면을 이룬다.

◈ 방향의식

인간문제에 대한 해결을 크게 두 가지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말하자면 환경에 작용하는 것이다. 환경을 정화하고 생활조건을 개선하여 정신적으로 불건강 상태를 일으키는 제반 요소를 제거하고 현대인을 심리적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환경보다도 인간자체에 작용하는 국면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의 불리한 여러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그러한 조건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힘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접근 중에서 여기에서 견지하려고 하는 입장은 후자이다.

환경의 정화와 조건의 개선은 오늘의 상황에서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모든 조건을 제거하거나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며 설사 그러한 노력이 있다 하더라고 그것이 도도히 흐르는 사회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흡사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무화상태로 만들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지 못할 때 인간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정신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 인간문제 해결을 위한 한 접근이 된다.

정신적으로 불건강한 역경을 이겨내는 힘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어디에서 그러한 힘의 원천을 찾을 수 있는가? 인내력, 의지력, 자아력 등 여러 가지 제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표현된 능력을 변별적으로 기술하는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힘의 근원을 지적해 주지는 못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을 방향의식(Sence of direct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력도 의지력도 결국 개인의 방향의식에서 발생된다는 생각이다.

방향의식이란 생의 목적의식이며 미래에 대한 소망이다. 올포오트(G. Allport, 1961)의 의도성(intentions)의 개념이나 매슬로

우(A. Maslow, 1968)의 자아 실현(self-actualization)과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생의 의미를 부여해 자신의 생애에 대한 계획을 가지게 한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불행감을 경험하고 방황하여 갈등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방향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디로 가야하고 그들의 생애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조그마한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고 어떤 어려운 경지에 들어갔을 때 쉽게 좌절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목적의식을 주어야 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방향의식은 어떻게 습득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아직 미해결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정의적 특성이기 때문에 인지적 학습과는 다른 밀도있는 학습의 기회를 요구한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는 다른 내면화에 의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합리적 이해는 물론 통찰력의 작용과 정의적 지원을 요구하는 학습과제이다. 상담은 정의적 특성의 학습기회를 제공해 준다. 다음에 그 점을 자세히 고찰하고자 한다.

상담은 밀도있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진정한 인간관계의 경험을 줌으로써 오늘의 인간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상담이 모든 인간문제 해결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지는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 문제가 진정한 인간관계를 희구하고 심리적 근거를 요구하며 뚜렷한 방향의식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라는 관점에서 상담이 공헌할 수 있는 여지는 넓게 틔어있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담의 필요와 오늘의 인간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의 역할을 확인하게 된다.

2. 상담의 원리

◈ 상담의 의미

상담(counseling)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 1957년에 있었던 학교상담자 양성을 위한 강습회를 계기로 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상담의 이론과 실제는 학교생활지도(guidance)의 한 방법으로 소개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 때문에 상담의 개념은 흔히 훈육과 대조되는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훈육은 규율과 처벌을 위주로 하는 학생지도 방법임에 반하여 상담은 학생이해를 위주로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상담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훈육의 과정과 대비될 수 있다. 그러나 상담이 전통적인 훈육을 대치할 수 있는 학생지도의 방법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상담은 학생지도방법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상담에 대한 또 하나의 잘못된 이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상담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다. 상담을 흔히 상담이라고 번역하며 상담의 주제에 따라 직업상담, 교육상담, 인성상담 등의 용어가 사용된다.

그런데 상담이라는 말은 전문적인 술어라기 보다도 일상용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까닭에 상담이라는 말은 상담의 개념에서 뜻하는 바 전문적인 과정을 의미하기 보다는 [조언] 또는 [개별적 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기업체에서는 원매자가 물건을 구입하러 왔을 때 개별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을 상담이라고 하며,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법률에 관한 조언을 구했을 때 방송국측에서는 법률상담을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현상은 상담이라는 말이 일상용어화되면서 더욱 현저해진 것이다.

그러나 상담은 [상담]이라고 번역될 수 있으나, 일상용어로서의 상담의 의미처럼 조언이나 개별적 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은 조언이나 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상담의 정의

상담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상담의 이론에 따라 상담을 규정하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론에 따라서는 상담과 심리치료(psychotherapy)의 용어를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하고 상담의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담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상담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개별적인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 정의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에 상담의 특수성을 명백히 하지 못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그러나 상담의 일반적인 목표와 의미를 제시함에 있어서는 충분하다.

상담의 정의에서 몇가지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지적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상담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도움을 자진해서 청해오는 대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담의 대상을 도상에 놓고 의견을 엇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연결성을 이루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한쪽 극단은 간단한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이고 다른 쪽의 극단은 정신치료를 요하는 성질의 문제이다. 이 경우 ①과 ②의 도움을 주는 것을 조언(advice)이라 하며, 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심리치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담을 태도상의 문제와 심리적 갈등의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학습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상담과 심리치료의 구분점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담은 정상적인 사람(normal person)을 대상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이다. 심리치료는 비정상적인 사람(abnormal person)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대비해서 이다.

상담은 [개별적인 관계]를 통한 학습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상담은 인간관계이다 상담의 전체과정은 진정한 인간관계의 과정이며, 이 관계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통찰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앞으로 가져야 할 방향의식을 학습하게 된다. 이 개별적 관계는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다른 인간관계와 성질을 달리한다.

첫째, 상담관계는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도움을 주는 사람을 믿을 수 있고 그러기에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라도 마음놓고 털어 놓을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상담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대화에 대한 비밀보장이 강조되는 것도 이와 같은 신뢰감을 유지하려는 배려에서이다.

둘째로 상담관계는 수용의 관계이다. 거부하지 않고 인정되며 또 한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관계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경험하고 사람과 사람의 진실된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개별적관계]의 특징이다. 지금까지 자기비하의 비굴한 느낌 속에 살아왔던 사람도 수용과 인정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심리적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셋째로 상담관계는 공감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다른 인간관계와 그 성질이 다르다. 공감적 관계란 두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관계라는 뜻이다. 어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을 함께 느끼고 동일한 감정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관계이다.

그것은 단순히 동정적인 관계가 아니다. 일방적인 연민의 정이나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제한이 있고 줄 수 있는 도움의 한계를 지니면서도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침입할 수 있는 관계이다.

상담은 학습과정이나 상담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의 개발에 의하여 새로운 발달을 가져오는 학습경험의 연속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확장된 관점을 학습해가는 과정이며 자신의 삶을 보다 풍요하게 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 종합, 조직하는 경험을 누적하는 과정이다.

상담은 학습과정이라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일차적으로 그 문제 해결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보다도 일차적인 관심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학습경험이라는 견지에서 그 과정을 경험하는 일에 주어진다. 이 점은 심리치료와 또하나의 차이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심리치료에서는 성격의 변화와 문제 해결이라는 치료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상담은 학습과정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포함하는 상담과정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것을 의미하지는않는다. 이러한 견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내담자중심 상담이론(C. Rogers ; 1951)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 또한 심리치료와다른 점이다. 심리치료에서는 치료를 위하여 지시하고 명령한다.

◈ 상담의 역사적 배경

상담의 이론과 실제는 두 가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미국의 직업지도운동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건강운동이다. 먼저 직업지도 운동에 기인되고 있는 상담의 역사 배경을 고려하기로 한다.

1909년에 발간된 파아슨즈(Frank Parsons)의 저서 [직업의 선택](choosing avocation)은 직업지도운동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파아슨즈는 당시의 급격히 발전하는 산업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며 그러기 때문에 직업선택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은 적절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현명한 직업선택을 위하여 먼저 여러 직업의 특징을 이해하고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이해하여 둘 사이의 적절한 연결을 지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돕는 것이 직업 상담(Vocational Counseling)이라는 견해이다.

그후 직업 상담은 개인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각종 심리검사의 발달과 직업정보의 체계적인 전달방법의 발달에 의하여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특히 세계제일차대전 후 발달하기 시작한 적성검사와 지능검사는 직업 상담을 활발하게 하는 직접적인 작용을 하였다. 이러한 직업 상담은 학교생활지도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신건강운동의 기점은 역시 영향력 잇는 서적의 출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1908년에 발간된 비어즈(C. Beers)의 [마음의 실상 (The Mind That Found Itself)이라는 저서이다.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해 일반의 관심을 모으고 그것이 사회문제라는 점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하여 많은 책이 나오게 되고 대중강연회가 열렸으며 정신건강단체가 조직되었다. 그 결과 정신질환을 숙명적으로만 생각하던 사람들이 정서적인 곤란과 정신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프로이드(S.Freud)에 의하여 창시된 정신분석학이 정서장애와 정신질병의 치료방법으로써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일반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은 심리치료와 임상심리학 (Clinical psychology)의 탄생과 계속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의학의 분야로서 발달한 심리치료와 심리학의 한 분야로서 출발한 임상심리학은 불가피하게 갈등상태를 일으켰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임상심리학자들은 심리치료이라는 용어 대신 상담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정신건강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한 상담은 직업 상담의 조류와 합류하여 상담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가 상담의 독자성은 1940년대에 들어와서 본격화되었고 그것이 학교교육에서 일반화됨에 따라 생활지도의 핵심적인 활동으로 보편화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카운슬링운동은 1957년 학교 상담자를 집중적인 단기교육에 의하여 양성된 상담자의 수는 1,000여명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카운슬링운동은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중고등학교를 기반으로하여 시작되었으며 1962년 대학에 학생지도연구소(student guidance center 또는 student counseling service)가 설립되면서부터 대학으로 확대되었다.

1963년 한국 카운슬러협회가 조직되고 회원 1,000여명을 확보하면서 우리나라의 카운슬링운동은 학교내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사회일반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제 상담은 심리적 치료의 의미보다도 청소년지도의 중요한 기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카운슬링운동은 근자에 이르러 학교이외의 분야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청소년 복지기관과 교정기관에서, 그리고 산업현장과

군대에서 상담의 이론과 실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산업 상담(industrial counseling)이라고 부르고, 교회에서는 목회 상담(pastrol counseling)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상담의 심리학적 원리를 각계의 현장에 적용한 것이다.